친절한 우리 고모

친절한 고모의 친절한 이야기

  • 2025. 6. 20.

    by. 친절한 고모

    목차

      향수에서 나무 향이 맡아지는 그 순간

      향수를 처음 뿌렸을 때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.
      몇 분, 아니 1시간쯤 지나고 나서야
      그 사람의 옷깃 어딘가에서 은은한 나무 향이 퍼져 나왔다.
      향은 강하지 않았다. 하지만 깊었다.
      그 향이 잔향으로 남았고, 그 사람도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았다.

      그때 맡았던 향료가 **샌달우드(Sandalwood)**였다.
      우디 계열 향료 중에서도 유독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이 향료는
      왜 그렇게 많은 향수의 베이스 노트에 꼭 들어가는 걸까?
      단순히 ‘나무 향’이라서가 아니다.
      이번 글에서는 샌달우드가 향수에 사용되는 진짜 이유,
      즉 향기 설계 속에 숨겨진 감정, 구조, 심리적 목적까지 깊이 있게 풀어보려 한다.

       

      이 향수에 샌달우드가 들어간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?


      1. 샌달우드란 어떤 향료인가?

      샌달우드는 **인도산 백단나무(Santalum Album)**에서 추출된 에센셜 오일이며,
      수천 년 전부터 종교 의식, 아유르베다, 아로마테라피 등에서 사용된 향료다.

      주요 특징:

      • 향기: 크리미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나무 향
      • 감성적 느낌: 안정감, 정돈됨, 편안함
      • 휘발성: 매우 낮음 → 잔향에 오래 남는다
      • 역할: 베이스 노트, 고정제, 감정 안정 유도

      샌달우드는 머스크나 앰버와 함께
      향수의 마지막 인상, 즉 사라지는 순간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핵심 향료다.


      2. 샌달우드가 들어가는 ‘진짜 이유’

      샌달우드는 단순한 향이 아니라,
      감정적·과학적 설계 목적을 가진 향료다.
      향수 디자이너들이 이 향료를 넣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:


      ✅ 1) 향의 지속력과 안정성을 높인다

      샌달우드는 휘발성이 낮고, 분자 구조가 안정적이어서
      다른 향료들이 빠르게 날아간 뒤에도 피부에 오래 남는다.
      그 자체로도 향기롭지만,
      다른 향료의 잔향을 잡아주는 고정제(fixative) 역할까지 한다.

      👉 이 향수가 시간이 지나도 흐트러지지 않는 이유,
      그 중심에 샌달우드가 있다.


      ✅ 2) 따뜻한 감정을 유도한다

      향은 감정과 직결된다.
      샌달우드는 사람에게 안정감, 따뜻함, 정서적 포근함을 준다.
      특히 차가운 시트러스나 날카로운 스파이시 노트 뒤에
      샌달우드가 들어가면 전체 향의 감정 톤이 차분하게 정돈된다.

      👉 그래서 이 향수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, 오래도록 끌리는 느낌을 남긴다.


      ✅ 3) 향수 전체의 밸런스를 맞춰준다

      플로럴이 강하면 향수는 ‘화려해지고’,
      스파이시가 강조되면 ‘강렬해진다’.
      그럴 때 샌달우드는 그 과함을 눌러주는 ‘균형 조절자’ 역할을 한다.

      • 플로럴 + 샌달우드 → 부드럽고 여성적인 잔향
      • 스파이시 + 샌달우드 → 따뜻하지만 세련된 중성향
      • 시트러스 + 샌달우드 → 가볍지만 잔향이 깊은 구조

      👉 이 향수가 세련되면서도 과하지 않은 이유,
      바로 그 중립성의 마무리에 샌달우드가 들어있기 때문이다.


      3. 샌달우드가 들어간 대표 향수 예시

      향수명샌달우드의 역할특징
      르 라보 상탈 33 중심 향료로 사용 우디 중심, 크리미하면서 도회적
      샤넬 에고이스트 잔향 설계의 핵심 따뜻하고 남성적인 구조 완성
      바이레도 블랑쉬 머스크와 함께 잔향 유지 깨끗하고 중성적인 베이스
      톰 포드 사하라 누아르 오리엔탈 향 구조 강화 강렬한 중동풍 향의 정돈 역할
       

      샌달우드는 ‘존재감 없는 주인공’이다

      샌달우드는 튀지 않는다.
      하지만 그것이 빠진 향수는 무너진 구조처럼 느껴진다.
      그건 향수의 ‘기둥’이 빠진 느낌과 같다.

      이 향수에 샌달우드가 들어간 이유는 단 하나다.
      향기의 시작과 끝을, 감정의 흐름으로 연결하기 위해서.

      샌달우드는 단순한 우디 향료가 아니라,
      사람의 마음을 오래도록 남기는 설계적 장치다.
      그리고 향수는, 바로 그런 장치로 완성된다.